5-2.느낌있는 그림

천경자의 일생

소리향단소 2015. 12. 3. 23:10


 

죽은뒤 천대받는 미술계의
거목 천경자 화백



 

천경자 화백의 이력사항


 


   ·출생 : 1924년 11월 11일, 전남 고흥군 
   ·사망 : 2015년 08월 06일 
   ·직업 : 화가 
   ·성별 : 여성 
   ·학력 :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졸업 
   1. 프로필
     학력 - 1944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졸업 
          - 전남여자고등학교  
     경력 - 1981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 
          - 1978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과장 
          - 1954 ~ 1973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수상 - 1999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 1983 은관문화훈장 
          - 1975 3·1문화상 
          - 1971 서울특별시문화상 
          - 1955 대한미술협회전 대통령상 



 



 



 



 



 



 



 



 


 


   위 화보는 조선일보 '글 장형태 기자/인턴 곽유정' 두분의 게시된 
   화보를 참고한 매일를 받아 그대로 전합니다.
   아래 내용은 다움메일을 참고로 하여 성장과정을 살핍니다.


 


 


   소녀 시절에 스스로 지어 붙인 “경자”라 이름을 자신의
   본명인 “천옥자” 앞에 두었다.
   그 뒤 그 이름은 인생의 '아름다움' '슬픔' '외로움' 들을 
   신비롭게 표현할 줄 아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여류화가의
   이름이 되었다.



 


 

슬픈전설의 49페이지(1976)



 


 

길레언니(1973)


 

  
   천경자 화백은 어려서부터 독특한 감수성을 가지고 화가가 
   되기를 꿈 꾸었습니다.
   그녀가 자랄 당시 대부분의 여자는 소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일제시대 였습니다.



 


 

  
   하지만 천 화백은 교육과 문화에 열린 가정환경 덕분에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 즈음 집안에 결혼을 권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을 공부하려고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물론 집안의 반대가 심각했다.



 


 

   
   천 화백은 정신병자 흉내를 내면서까지 부모님께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라댔다.
   미친듯이 웃다가, 울기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결국 부모님은 허락했고, 홀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났다.



 


 


   동경여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천 화백은 유학 중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다시 신문기자였던 두번째 남편을 맞났다.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쉽지 않았던 인생의 고개들이
   그녀의 가슴 속에 쉽게 식지 않는 예술혼을 잉태하였으나.
   그의 인생은 쉽게 풀리지않았다.



 


 


   급기야 두번째 결혼한 남편과도 헤어지고
   네 자녀의 생게도 맡아야 했다.



 


 


“나물 캐러 갔던 동네 소녀가 허리띠인 줄 알고
   꽃뱀을 집으려다가 물려 죽은 일이 있었다.
   무서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끌리는 그 장면이 어렸을 
   때부터 머리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꽃과 뱀이 있는 여인상, 1967년


 

  
   그러나 내가 처음 그린 뱀은 꽃뱀이 아니라
   한 뭉텅이의 푸른 독사였다.



 


 

1951년작 생태(천경자라는 이름을 알린 작품)


 


   인생의 실패와 좌절을 맛보고, 그녀가 자신의 삶에 
   저항하기 위해 택한 소재가 뱀이었다.



 


 


   그녀는 전남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뱀에 대한 이미지를 탄생시켰다.
   6.25로 인하여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천 화백은
   그 곳에서 자신이 그린 뱀 그림 전시회를 하였다.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뱀을 그렸다’면서 신기해 하고,
   그것이 “천경자”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한 것이다.



 


 


 


   또한 그녀의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꽃과 여인이다.
   가장 아름다움의 표현이 꽃과 여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아름다움이 주로 보여지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은 외롭기도 하고 슬퍼보이기도 한다.
   고독의 미와 아픔의 성숙이
   천경자의 예술을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만들고 있다.



 


 


 

'외국의 서커스'


 


   그러던 1974년, 18년간 재직하던 홍익대 교수직을 버리고,
   문득 천 화백은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남태평양과 유럽, 남 아메리카까지 
   계속되고, 자신의 작품 세계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보여졌던 안타까운 인간의 또 
   다른 모습들을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에 비추어서 그림
   으로 남기기도 한다.
   이때부터 여인의 얼굴과 옷차림이 지역에 맞게 달라지고 
   평화로운 대 자연의 모습, 삶의 풍물들이 이색적이다.



 


 


 


   1991년에는 천 화백이 힘든 일을 겪기도 했다.
   국립 현대 미술관 소장의 “미인도”에 대한 진품 시비 
   사건 때문이다.
   천 화백은 끝까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하였지만, 
   많은 감정사들은 그녀의 작품이 틀림없다고 판결하였고,
   입장이 난처한 미술관측도 천 화백의 작품이라 주장하였다.



 


 

꽃과 여인의 '미인도' 진품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천 화백은 자신의 작품들을
   서울 시립 미술관에 기증하고, 큰 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 뒤 진품 위조 사건은 범인이 밝혀졌으나 천 화백은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은 채 스케치북을 옆구리에 끼고 
   중남미를 여행하고 있었다.



 


 

탱고가 흐르는 黃昏(황혼) (1978)



 


 

불티모어에서 온 여인 (1978)~(1993)



 


 

꽃과 나비 (1973)~(1978)



 


 

인도 길가의 코부라 춤(1978)



 


 

아그라의 무희(舞姬) (1978)~(1979)



 


 

1943년 노부(老婦) - 데뷔 작품(1978)



 


 

노오란 산책길 (1978)~(1983)



 


 

괌도에서 (1978)~(1983)



 


 

나비소녀 (1978)~(1985)



 


 

막간 (1978)~(1986)



 


 

윤사월(閏四月) (1978)~(1987)



 


 


 

나바호족의 여인 (1978)~(1988)



 


 

막(幕)은 내리고 (1978)~(1989)



 


 


 

캬바레(뉴욕) (1978)~(1990)



 


 



 


 


 

그라나다의 창고지기 하는 女人 (1978)~(1993)



 


 


 

황혼의 통곡 (1978)~(1995)



 


 


 

靑春의 門(청춘의 문) (1968)



 


 


 

2015. 10. 15. 양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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